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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사이에서 뒤늦게 실감했다.
아직 코트 위에 남고싶다는 것을.
우리도, 이곳에 서 있었다는 것을.
우리도 이곳에 서 있었다.
w. 서 소야
지는 싸움이 싫었다.
어렸을 때 한 번 쯤은 누구와 싸워 본적이 있을 것이다. 싸우면서 성장해 나가는 것이라는 어른들의 말처럼, 우리는 어렸을 떄부터 여러가지 이유로 수없이 싸웠을 것이다. 친구들과의 의견 차이, 말 다툼, 따돌림, 성적 같은 것들. 아마, 이 모든 싸움에서 지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운동 경기에서도 역시 같은 것이리라.
배구를 시작하게 된 것은 왜 였을까. 생각해보면 우연히 TV채널을 돌리다가 보게 되었던 지역대회 때문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중력을 무시하듯, 날아오르는 새를 보는 듯한 스파이커들과 그 새들을 가로막아버리는 철벽같은 블로커. 그리고 모두의 뒤에서 등을 지켜주는 주축인 리베로까지. 아주 간단한 단어로 나는 이 모두의 움직임에 ' 반해버렸다 ' 라고 단언할 수 있다. 그 때 부터였다. 배구공을 사고, 배구화를 사고, 리시브를 연습하고, 배구부에 들어가 포지션을 찾아가면서 배구에 열중했다. 그렇게 나는 고교에 진학하게 되고, 다시금 배구부에 입부하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 3학년 주장의 자리에 서있다.
배구를 하던 3년 내내, 우리 학교는 이름도 알려지지 않고 배구도 갓 시작한 새내기 학교. 소위 말하는 약소고. 그런 학교였다. 실력이 나쁜 것은 아니었다. 센스가 좋은 세터도 있었고, 파워가 강한 스파이커도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연습시합도 이기는 때가 손가락에 꼽힐만큼 적었다. 그렇게 인터하이가 얼마 안 남은 지금, 열심히 하자는 초심은 잊은채 약하니까, 약소고니까 질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내 머릿속을 장악해 나갔다.
" 인터하이 대진표 나왔어요! "
1학년 아이가 인터하이 대진표를 들고 들어왔다. 제각각 하던 연습을 중단하고 모여 대진표를 살펴 보기 시작했다. 보고 또 봐도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이, 조용하던 체육관이 일순간 웅성거림으로 가득 찼다.
" 크으, 처음부터 강호고냐! "
누군가의 탄식이 체육관을 맴돌았다. 우리와 같은 약소고가 강호고를 이길 수 있을리가 없지 않은가. 애써 구겨진 표정을 숨기며 모두의 얼굴을 보았다. 어째서 너희들은, 한 번 이겨보자는 듯한 얼굴을 하고 있을 수 있는 거냐. 절대로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을 텐데. 홀로 시선을 바닥으로 내리 깔았다.
져버리는 싸움은 싫다.
져버리는 내가 싫다.
져버리는 팀이 싫다.
져버리는 배구가 싫다.
* * *
대진표가 나온지 며칠이 지났을까. 어느 덧 시간은 흘러 인터하이 예선 전의 날. 첫 경기 시작시간 까지는 아직 시간이 남은 우리들은 관람석에 앉아 다른 팀들의 경기를 보며 앉아있었다. 아오바죠사이와의 첫 경기인 팀도 있었다. 다테 공고와의 첫 경기인 팀도 있었다. 무너진 강호라지만 전 강호였던 카라스노와의 첫 경기인 팀도 있었다. 다들 목숨을 걸고서라도 이겨보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이해가 가질 않았다. 질 것을 뻔히 다 알고 있으면서 왜 저렇게 필사적으로 달리는 걸까. 왜 저렇게 필사적으로 리시브를하고, 블로킹을 하고, 스파이크를 치는 걸까. 의문의 답을 풀 시간도 없이 차례가 돌아왔다. 그렇게, 우리의 경기는 시작되었다.
1세트 스코어 25대 10. 압도적으로 저쪽이 1세트를 가져가 버렸다. 그리고, 2세트가 시작되려하고 있었다.
[ 삐익- ]
시작을 알리는 휘슬이 불렸다. 대열을 정리하고, 상대와 마주섰다. 이글거리는 눈빛. 승리를 갈망하는 짐승을 보는 듯한 위압감. 이 사람들을 이길리 없다. 이런 매서운 눈빛의 짐승을, 초식동물이 이길리가 없었다. 여러 생각이 교차하는 가운데에 서브가 날아왔다. 강한 파워와 스핀을 동반한 서브는 눈 깜짝할새 코트 안에 꽃혔다. 1점을 먼저 내준 것이다. 흐름을 줘 버린 것이다.
서비스 에이스로 몇 점을 줘버린 것일까. 어느덧 점수는 0대 5. 벌써 5점이나 실점이었다. 그럼에도, 다시금 서브가 날아왔다. 날아온 서브는 정확히 리베로의 팔을 맞고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 나이스 리시브! "
" 세터! "
세터를 거쳐 레프트 윙이 스파이크를 쳐냈다. 2세트 처음의 속공. 정확히 센터와 라이트의 중간에 내리꽃혔다. 드디어 1점을 득점했다. 서브권이 이 쪽으로 돌아왔다. 넣어진 서브는 상대편 라이트 윙의 팔을 맞고 네트를 너머오고 있었다.
" 찬스볼! "
" 에이스! 다이렉트! "
소리를 들은 우리 쪽 에이스가 넘어온 공에 스파이크를 꽃았다. 엄청난 속도로 바닥에 튕겨진 공은 우리 쪽의 득점을 알렸다. 그렇게 우리도 점점 점수를 따가기 시작했다.
그 후로 몇 분이 지났을까. 오분? 십분? 아마 그 정도의 시간이 흘렀을 거라고 생각한다. 현재 스코어는 17대 20. 머지않아 상대는 매치포인트에 들어간다. 그 강호고를 상대로 우리가 이 만큼이나 점수를 따냈다는 것에 놀랐다. 듀스가 되지 않는 한 우리는 지는 거겠지. 아니, 듀스가 되지 않더라도 우리는 질 것이 뻔하지만.
점점 숨이 벅차왔다. 땀이 턱선을 타고 또르르 흘러내렸다. 서있는 코트 위가 영화처럼 느껴졌다.
질 것이 뻔한 경기. 아니, 정말 질 수 밖에 없는 걸까.
고개를 들어 팀원들을 바라봤다. 나는 다시한번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아직, 이들의 눈빛은 죽지 않았다.
경기 전에 보았던 진 팀들의 필사적인 모습이 머릿 속에 스쳐 지나갔다.
왜 이들이 이렇게 필사적이었는가. 나는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었다.
지는 싸움이 싫었다.
지는 내가 싫었다.
지는 팀이 싫었다.
지는 배구가 싫었다.
아니, 배구는 좋다.
나는 단지, 지는게 싫은 마음을 배구가 싫다는 소리를 씌워 도망치려 한 것이다.
지는게 좋은 사람은 없다.
이기고 싶다.
그제서야 나는 뒤늦게 깨달은 것이다.
진다고 생각하면 진다는 것을.
이기려고 생각하지 않는 한 이길 수 없다는 것을.
나는, 정말 바보같은 주장이었다는 것을.
그리고 다시금 생각했다.
' 이겨보자 ' 라고.
상대 팀의 서브. 눈빛은 죽지 않았지만 꽤나 지쳐보이는 팀원들을 느낄 수 있었다. 지친 숨소리가 귓가에 들리기 시작했다. 이제야, 모두의 마음이 느껴지기 시작한 것이다.
" 한번에 끊는다-!! "
아무 말 없던 나의 입에서 터져나온 기합이 단단한 말에 모두들 놀란 듯이 눈을 크게 떴다가 이내 미소지었다.
" 오-스!! "
날아오는 서브를 받아내었다. 내가 받아낸 서브는 이내 세터의 손을 타고 엄청난 파위의 스파이크로 상대 코트에 매다 꽃혔다. 서브가 옮겨오고, 흐름을 타는 것은 이 쪽이었다. 어느덧 점수는 23대 24. 상대의 매치포인트.
다시한번 이 쪽에서 서브가 넣어졌다. 날아간 서브는 상대편 센터 미들블로커의 팔을 맞고 공중으로 날아올랐고, 세터의 손에 의해 스파이커에게 전달되었다. 휘둘러진 손의 파워를 담은 묵직한 공이 코트로 날아들었다.
" 나이스 리시브! "
그렇게 끝날 줄 알았던 시합은 우리팀 리베로의 팔에 의해 다시금 이어졌다. 정확히 세터에게 날아든 공. 나의 목소리가 체육관을 울렸다.
" 레프트-!! "
" 선배! "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토스. 나의 손이 공을 정통으로 꽃아내렸다. 하지만 그 공은 상대편 윙의 팔에 의해 올라왔고, 다시 세터에게 전달되었다. 날아드는 센터 미들블로커. 동시에 우리쪽 블록도 날아올랐다. 그리고 우리는, 먼저 날아든 미들블로커가 페이크라는 것을 즉시 깨닳을 수 있었다.
" 백어택...!! "
뒤늦게 날아든 레프트 윙이 스파이크를 날렸다. 빠른속도로 나의 눈 앞을 지나간 공.
일순간이 슬로우모션처럼 느리게 느껴졌다.
숨이 차고, 땀이 범벅이다.
아득해지는 정신과 귀를 울리는 함성소리
그리고 그 사이에서 뒤늦게 실감했다.
아직 코트 위에 남고싶다는 것을.
공이 코트안에 꽃혔다. 상대 응원쪽의 엄청난 함성소리와 함께 삐익, 시합 종료 휘슬이 불렸다. 23대 25. 우리 쪽의 패배.
" 정렬! "
" 수거하셨습니다! "
응원석에도 인사가 끝났다.
조금만 더 열심히 연습했더라면, 조금만 더 필사적이었다면 우린 이길 수 있었을까.
조금만 더 팀을, 나를 믿었더라면 우리는 이길 수 있었을까.
다시 한 번 코트를 둘러봤다.
이겨서 웃고 있는 팀, 아직 이기려고 필사적으로 경기하는 팀.
우리처럼 져서 울고 있는 팀도 있었다.
조용히 눈을 감았다.
아직 두근거림이 남아있다. 아직 고동은 멈추지 않았다.
아직 코트 위에 있고싶다.
코트 위에 남고싶다.
그제서야,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내가 여기에 ' 존재 ' 한다는 것을.
우리도 이곳에 서 있었다는 것을.
ただ、どんくらい 辛くても
단지, 얼마나 괴롭던 간에
歯食いしばって 生きていくのは
이 악물고 살아가는 것은
おまえ自身なんだよ
너 자신인거야
[ SPYAIR - LIAR 中 ]